새문안 찬양대 토막상식-1(김인식)

 윤호기

 2008-07-30 오전 10:11:00  1653
- 파일 : 김인식2b.jpg

 

 

한 엿새전에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들어와 떠들더니 또 조용하네.
그래도 그 불을 지핀 김티쳐(종수형이 그렇게 불렀었지.) 장로께 감사 드리고,
유머를 계속 퍼오느라 고생 고생하는 관희와 음악을 올리는 혜승이의 노력에다가
최근에는 자식자랑(?미안) 말고도 좋은 글을 올리는 신집사에게도 고마워하는 뜻에서
나도 또 글을 조금씩 써 보려 한다

제목은 새문안찬양대 토막상식이라고 붙였지만 사실은 상식이라기보다
상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것으로 아직 새문안의 찬양대원 누구도 잘 모르는
따끈따끈한 내용이다. 여러분이 봉사했던 새문안찬양대 대원이었던 것이
자랑스러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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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문안의 찬양대는 1910년에 최초의 음악교사 김인식이 조직하였다.

윤경로 장로가 쓰신 새문안교회100년사에는 찬양대가 1921년에 공식창립된 것으로
되어있고 초대대장이 김영환장로라고 하였는데 이는 좀 왜곡된 것으로 최근에
밝혀졌다. 누가 밝혔을까? 그게 나거든.(^^)
실은 찬양대 창립과 관련한 기술이 1913년과 1921년으로 엇갈리게 나오고 있어
궁금하던 중 최근 몇년의 조사에서 초기양악을 주도한 인물들까지 조사하게 되었고
그래서 다 알게 된 사실이지.

도대체 김인식이 누군데?

찬송가 144장(통일찬송가나 새찬송가나 같다. 참고-새문안은 7월1일부터 새친송가 쓴다)
을 보면 작사가로 김인식,1905라고 씌어 있다.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원래 평양 숭실 출신으로 재학시절 선교사들의 오르간 연주에 요새말로 뿅 가서
그걸 갖고 싶어 친구 몇명을 설득해 돈을 모아 선교사가 쓰던 고장난 오르간을 사서 고치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히 연주하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하도 시끄럽게 구니까 쫓겨 나기도 했단다.)

한번은 어떤 선교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또 뿅 가서
그 선교사를 졸라서 돈은 주고 바이올린을 구입했지. 뭐 싼 거였겠지만.
아무튼 그게 제 손에 들어온 날부터 대충 제손으로 음을 잡아 놓고는 매일 같이 연습해서
며칠 뒤 주일에 선교사들 앞에서 찬송가를 연주해 선교사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열심을 간파한 선교사들이 그를 하급학년 음악선생으로 기용하여 가르치게 되었고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1907년 상경하게 된다.

그당시 서울은 평양만큼 양악 보급이 활발하지 못했다. 이화, 배재가 있었지만 아마도
조선인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인식은 유학가기 위해서 당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YMCA(황성기독교청년회)에
등록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가 창가를 부르는 것을 들은 동료들이 열화와 같이 그걸
가르쳐 달라는 통에(당시엔 안 가르쳐 주면 의가 상할 정도로 열심들이었단다.)
그걸 가르치다가 YMCA측에서 아예 강좌를 만들어 주어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또 국악을 가르치는 민간교육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에 양악과정이 생기자
교사로 부임하였고 (그는 여기서 난파 홍영후, 이상준을 가르치게 된다) 계속해서
기호(중앙), 진명, 경신, 배재 등의 학교 음악선생을 역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유학갈
기회를 놓치고 음악교사로만 평생 봉직하였다.

그가 출석하던 새문안교회에서 1910년에 벽돌예배당을 준공하고 찬양대를 조직하게되자
초대 대장 겸 지휘자로 일했고 집사로도 선출되어 장년부 부장도 하고 제직회 서기로도
일했다.

그는 YMCA에서 가르친 청년들을 중심으로 경성찬양대라는 최초의 남성합창단을
조직하였고 1915년에는 경성찬양대 주최 음악회에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염정동찬양대
(새문안)와 종교찬양대를 초빙해 같이 합창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찬송가 편찬작업에도 크게 일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워낙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여 확인된 것이 144장이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1934년인가 부터 정동교회찬양대
지휘를 맡게되면서부터 감리교의 찬송가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또 그 무렵 양악 전파에
큰 공로를 세웠다 하여 이상준, 김형준과 함께 조선음악가협회에서 표창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한국인 첫 작곡가로도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대표곡 학도가)   -끝-

 

 
 
       
 

유관희

2008-07-30 (11:44)

 

윤집사, 수고하셨네~.
 

김영길

2008-07-30 (21:42)

 

드뎌, 윤형이...
가끔 예본찬양대 동영상 찾아봐도 뵈질 않네요. 음, 한번 보고 싶구려!~

 

윤호기

2008-07-31 (1:7)

 

계속 교회학교쪽으로 보직이 맡겨져서 찬양대를 못해요. 대신에 아들녀석이 한기림을 열심히 하고 있지요. 이녀석은 학교합창단도 하고 있어서 나름 음악실력이 있어 가지고 내가 노래하는 걸 듣고 음정이 떨어진다는 둥 발성이 잘못됐다는 둥 해서 골치 아파 죽겠어요.
 

이혜승

2008-07-31 (9:47)

 

아니....제가 잠시 소흘한 틈을 타...글이 이렇게 올라 오다니요....ㅎㅎ
여기가 북적거려야 좋은데....너무 조용하셨댔어요.
우선....저 다녀간다는 인사 쓰고....밑의 글로 내려갑니다.
나가기 전에....새문안 성가대의 역사를 자세히 써 주셔서 잘 읽었어요...역시 호기형~^^
 

신영정

2008-08-01 (20:33)

 

감사합니다,
MY PRIDE 새문안 찬양대의 태동을 알려주셔서...
아드님 역시 부전자전! ,그 음악성과 치밀함이 어데 가겠습니까?
앞으로도 좋은글 자주 부탁드리옵고, 유교수님의 유모어와 혜승누나의 아름다운 음악이
요사이 뜸하니 이곳에 들려도 신?이 않나요...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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