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1885-?)은 선각자 중의 한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유선은 [한국양악백년사]에는 선각자의 명단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유선이 선각자로 꼽았던 김영환이 김형준을 선각자중의 한사람으로 꼽았고
앞서 소개한 김인식, 이상준 하면 따라 붙고 연배도 비슷하고 표창도 같이 받았다.

재미없지? 계속 낯선 이름들만 등장하고 다 그사람이 그 사람같고 하니까.
조금만 참고 들어 봐.
그런데 이 김형준은 새문안의 옛 문서에 제일 이름이 많이 나오는 음악가다.
당회록과 제직회록, 교회지에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등장한다.
찬양대원, 찬양대장, 찬양대 지도위원, 전도사.

김형준에게 있어 제일 유명한 건 '봉선화'의 작사자라는 것이다.
'봉선화'가 무엇인가. 소위 최초의 예술가곡이다. 작곡은 홍난파가 했다.
그런데 홍난파는 예술가곡으로 작곡한 게 아니다.
자신의 창작집 '처녀혼' 맨 앞에 애수라는 제목의 바이올린곡을 실었다.
그런데 그 6년뒤에 김형준이 가사를 붙여서 '봉선화'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김형준이 가사를 붙이지 않았으면 예술가곡의 효시는
다른곡이 되었을지, 어쩌면 다른 작곡가의 곡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봉선화'는 민족의 애환을 달래주는 곡이라서 나중에 일제가 금지곡으로
하여 못 부르게 했다. 1, 2절에서 봉선화의 처량한 신세를 그렸으나
3절에서 겨울에 형체가 없어져도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김형준은 평양숭실 출신으로 숭실 선배 김인식에게 음악을 배웠고
정신과 경신에서 음악교사를 했다.
새문안에서는 김인식이 지휘할 때 대원이었고 나중에는 지휘도 하게 된다.
성악도 하고 코넷(트럼펫과 유사한 악기)을 잘 불어서 교회에서도 행사때면 때로
연주를 했었다고 한다.

또한 김형준은 최초의 여류 피아니스트 김원복의 부친으로도 유명하다.
학창시절 김인식이 풍금을 구입해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워 하였는데
자신은 고학하는 처지라 못하면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저걸 시키리라
마음 먹고 원복이 태어나자 피아노 공부를 시켰던 것이다.

김형준은 해방이후까지 새문안을 지키며 찬양대장도 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