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문안찬양대 토막상식-4(김영환)
등록자 :   윤호기
등록일자 :   2008-10-13 오후 6:42:00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최초의 피아니스트 김영환이다.
그 역시 최초가 몇 개 더 있다.
최초의 정규 음악가, 연희전문 최초의 음악교수, 최초의 피아노 소장가 등등.

앞서 소개한 김인식, 이상준, 김형준은 선교사 또는 한국인 한테 음악을 배웠고
또 많은 신식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고 많은 다양한 악기를 다루었지만
정식으로 음악을 전공한 적이 없는, 말하자면 아마추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영환은 최초로 음악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한 최초의 정규음악가이다.

그 역시 평양 숭실출신이다. 대지주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어려서 여선교사에게 풍금을 배우기도 하고 숭실중학까지는 풍금, 아코디온 등
많은 악기를 다루며 음악가가 될 꿈을 키웠으나
숭실1회 졸업생인 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다 일찍 죽자 완고한 할아버지 때문에
법과를 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며칠간 집을 비운 사이 집에서 쓸 돈을 맡았던 앞집사람에게
거금을 받아낸 그는 그길로 동경 유학길에 오른다.

그래서 우에노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돌아왔고
최초의 피아니스트답게 각종 음악회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
(당시 음악회의 성공여부는 김영환의 출연여부에 달렸다고 한다.)
음악과가 설치되진 않았지만 연희전문에 음악교수로 부임하여
개화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합창단도 조직하는 등
연희전문을 통하여 평양의 숭실 못지 않게 많은 음악인재들을 길러낸다.

피아노를 전공하였지만, 당시 음악가들이 그렇듯이, 다른 악기도 잘 다루어서
유학시절엔 방학때 서울에서 음악회 관계로 만난 홍난파에게 바이올린의
제대로 된 조율과 운지를 한 수 가르치기도 하고
(홍난파는 김인식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정식 조율과 운지법이 아니었다.)
음악회에서 실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다.

귀국하여 10여년간 연희전문의 과없는 음악교수직을 역임하였고
(후임은 현제명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맡았다.)
중앙중, 숙명여중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으며, (무용가 최승희가 그 시절 제자)
짐벌리스트, 하이페츠 등 외국의 유명한 연주자를 초치하는 일도 하였다.

새문안에서는 1921년에 찬양대를 새문안교인으로만 구성하도록 하는 일을
맡아서 수고하였고 지휘자로 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후손은 교회에 남아있지 않고 조카 조은내, 조길자가 1950, 60년대의 찬양대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