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한번은 왕 문혜군을 초청해 놓고, 소 잡는 기술자를 강사로 내세워 도를 강의하게 하였다. 강사는 시범을 보였고, 그 손놀림은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문혜군이 경탄하며 말했다. "아아, 훌륭하도다!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도 있는가?" 소 잡는 기술자가 칼을 놓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이 아니지요. 제가 처음 소 잡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보이는 것이 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소가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으로 소와 만날 뿐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췄고, 마음만이 움직입니다. 오직 소의 결대로 칼을 움직여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을 쪼개 벌리고, 뼈와 뼈 사이의 빈 곳에 칼을 밀어 넣고, 소의 몸 중 원래부터 빈 곳을 따라가니 뼈나 살이 엉겨 붙은 곳에 칼이 닿는 일이 없고 하물며 큰 뼈에 닿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솜씨 좋은 사람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 데 그것은 살이 엉긴 곳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다달이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칼은 지금 19년이 되었습니다. 고깃덩이를 가르고 발라내어 쌓이면, 그제야 비로소 저는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돌아보며 흐뭇해합니다. 그리고는 칼을 닦아 넣어두지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교수가 심리학용어인 "Flow"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 후 이“플로우 현상”을 가장 잘 표현한 예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다. 컴퓨터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이나 인터넷에 정신을 “잃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즉 미친 듯이 게임을 했다고나 할까? 내가 아는 어느 40대 중반의 여자 분은 얼마 전에 응급차에 실려 간적이 있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얼굴이 발개지면서 대답하기를 “스파이더 카드놀이(MS-Windows에 속한 게임)를 너무 열심히 해서...자그만치 8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했거든요”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분의 경우는 지나친 “플로우 현상”에 속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시간감각에 변화가 오고 심신은 절대적인 집중력 상태에 들어가면서 거의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플로우(Flow) 라고 한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에 의하면 많은 훌륭한 예술가, 특히 음악가와 운동선수 등이 자주 이러한 플로우를 경험하고 있으며, 얼마나 자주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플로우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한다. 즉 음악가의 경우 그들은 “미친 듯이” 연습하고 연주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음악가들이 미친 듯이 연습하고 연주하는 그 플로우 현상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최근 독일 음악생리와 음악가의학 협회(Die Deutsche Gesellschaft für Musikphysiologie und Musikermedizin e.V. [DGfMM])에서 심리학자 안드레아스 부르치크(Andreas Burzik)가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기악 연습에 관한 플로우 현상에는 7가지 전제조건과 4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여기에 전부 소개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몇가지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연주자에게 그의 능력에 맞추어 계획한 단계적인 연습곡을 제시하여야 한다. 너무 어려운 곡은 연주자에게 좌절감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반면 너무 쉬운 곡은 연주자가 지루하게 느끼게 한다. 어려운 과제가 연주자의 도전정신을 자극할 때도 있지만 그가 플로우에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목표가 되기 쉽다. 한 번에 완벽한 결과에 도달하기 보다는 곡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곡을 이리저리 다루다 보면 음악해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어려운 부분에 관한 손쉬운 접근 방법이 이루어지게 된다. 즉 연습은 “어려운 것을 제대로 빠른 시간에 마스터하는 것”과 같은 “결과 지향적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가지고 천천히 놀아보는 것”처럼 “과정 지향적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기 조정선수가 한명 있다. 그의 목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이다. 가령 금메달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1분에 100번 노를 저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치자. 그러나 그의 현재 능력은 1분에 고작 20번에 불과하다. 결과지향적인 선수는 자신의 능력이 100번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그의 연습과정이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틀림없겠지만 과정지향적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오늘 21번에 도전하는 것이다. 20번 보다 한 번 더 노를 저어서 21번에 도달하는 것은 분명히 도달 할 수 있는 목표일 것이고 그것을 달성하는 오늘은 그에게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 다음날은 22번, 또 다음 날은 23번, 24번, 25번..이렇게 즐거운 과정을 겪노라면 그는 어느 순간에 100번에 도달 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마치 점수를 따내듯이 즐거운 과정이 되는 것이다. 바이에르의 번호 하나하나가 “안 틀려야 할 목표들”이 아니고 “즐겨도 될 대상”일 때 피아노를 치던 어린이가 어느 날 작곡가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베토벤, 하이든, 모차르트가 그렇게 위대한 작곡가가 된 것이다.

같은 컴퓨터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는 중간에 화가 나서 조이스틱을 던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게 되는 것은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에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연습은 지식과 함께 대체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연습을 “틀리는 부분을 안 틀릴 때까지 반복 연습하는 것” 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새로운 요구를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점수를 올리는 게임” 으로 생각하느냐는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틀렸다고 점수가 깎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할 때 마다 점수가 올라간다고 생각한다면 연습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 이제 우리 연습에 한번 미쳐볼까요?

(글: 장우형 박사, 현재 서울장신대 교수)